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 어느 곳을 들여다 봐도 내 짐이 없는 곳이 없었다
거실, 부모님 방, 내 방, 컴퓨터 방 까지
온통 짐이 쌓여 있었고, 쇼핑하고 온 그 쇼핑백 그대로 기억에서 지워진 옷 들도 있었다
가끔씩 내가 발견 하고 몇 번 입기도 했지만 그렇게 쓸모도 없이 시간과 자리만 축내다 빛 바랜 옷, 책, 잡동사니가 너무나도 많았다
치우라며 잔소리를 들으면 먼지 쌓인 곳만 슬쩍 치울 뿐이었고, 암만 옷을 사다 날라도 입는 건 눈에 익은 오래된 편한 옷, 침대 맡 옷장에 있는 옷 뿐이었다
책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앞 뒤로 꽂아놓아 봤자 앞에 둔 책들만 그저 훑어볼 뿐 뒤는 손도 눈길도 가지 않았다
그러다 독립하며 청소를 시작 했다
괜찮은 필기구를 온통 모아 기부하는 곳에 보냈고(그 때 필기도구로만 20키로는 족히 보냈다)
거진 하루에 한 번씩 커다란 부직포 가방으로 서너개씩 의류수거함과 일반 쓰레기로 옷들을 비워냈다
나중에는 아빠가 그냥 앞에 두면 본인이 가져다 버리고 오겠다고 할 정도로 내 짐은 많고도 또 많았다
이런 내게 비우는 것의 흥미를 준 계기가 넷플릭스의 < 미니멀리즘 :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 이다
그 외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도 있지만 이건 그렇게 와닿지 않는 것도 있었기에..
쌓아 둔다고 내게 모두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며 그게 내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막연히 느꼈던 불편함이 정말 내 몸이 참다참다 못 참고 표현하는 한계치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그 때 전공책부터 온갖 것을 버렸던 것 같다
다큐를 보고 나서는 미니멀라이프 카페에도 가입 했고, 주기적으로 물건을 비우면 비우는 물건들을 찍어 기록하는 SNS 계정도 만들었다 지금 200개 정도의 물건을 비웠다
그러다 접한 것이 오늘 완독한 이 책이었다
봐야지 하며 e북으로 시도 했지만 하도 책을 읽지 않은 시간이 길어 계속 해서 포기 했다가 종이책으로 빌린 김에 열심히 읽었다
온통 비움의 예찬이었는데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냐면, 이 번역 한 문장 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간결하고 깔끔해 보여서
내겐 가위가 세 개 있다
하나는 주방에, 하나는 책상 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현관에 있다
주방은 그 쓰임새가 고정 되어 있지만 두 개는 고정 되어 있지 않다
요즘 세탁 세제가 저렴히 나와 혼자서는 하나도 몇 달을 써야만 다 쓸 수 있는 걸 알면서도 4통이나 샀고
맛있으면 나눠 먹어야지 하며 산 고기는 혼자 절대 먹어 치우지 못할 정도였다 다양한 부위들로 2kg, 750g, 만두 2kg 등 냉동실을 꽉꽉 채워서 열어 볼 엄두도 나지 않게 했다
집에서 열심히 밥 해 먹을거야! 했지만 날이 추워서, 귀찮아서, 냄새 밸까봐 등의 이유로 밖에서 해결하거나 결국 라면을 먹으며 냉장고 속 식재료들을 썩거나 상하게 만들었다
침대에 누우면 이것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나는 정말 답이 없다며 답답해하다 홀로 괴로워했으며 용케 다 비우고 나면 다시 채우려 들었다
비우는 과정에서 기억 저편에 있던 식재료들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끈적한 잔해가 남는 경우도 있었다
어차피 다 쓸거니까 라며 할인할 때 무리해서 산 세안 용품은 뜯지도 않은 채 여전히 욕실 선반에 있었고, 화장품은 내년이면 유통기한이 지난다 이미 지난 애들도 있었고, 턱 밑까지 도래하고 있다
옷은 66L 박스 4개를 꽉 채우고도 넘쳐서 압축팩 이불 담는 사이즈를 두 개나 써야 했으며 반팔은 따로 또 담아 두고 있다
이 외에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취미생활로 하고 싶어 모았던 자잘한 잡동사니들까지..
이 몸 하나 건사하는데 너무 많은 것들을 필요로 했고 그 것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필요치 않은 것이란 사실에 조금 눈 앞이 아찔했다
얼마나 많은 낭비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 스스로를 돌보는 데에 쓰지 않고 헛된 곳에 쏟아붓고 있었던 걸까
이 것들을 깨닫고 생각하는 데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비우고 나서 후회하는 건 없다고 했다
정말 후회되고 떠오르면 그 때 다시 구하면 된다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안다
내 손을 떠나보낸 것들 중 후회하는 물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걸
그리고 비워진 공간에서 조금 더 편하게 누워 책을 읽고 스트레칭을 하고 지금 처럼 기록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소무품은 더 이상 같은 부류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은 채 사용하여 없애면 되지만 그 ‘미래’에 갇혀 있는 것 역시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장기프로젝트로 생각 하며 살았다지만 그 안에서 더 크게 부담감을 느낀 건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미래에 맡기며 계속해서 써야 한다는 것
정말 안 되면 슬프더라도 보다 저렴한 가격에 당근 하거나 기부 하거나 해야지 뭐, 생각 한다
내게 단순히 물건이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중복된 것들이 많고 그 안에서 자각하지 못하는 게 컸다
그러니 같은, 비슷한 걸 사고 또 사고 또 사고..
그걸 비운 곳은 그나마 뭐가 있는지 사지 않게 되었다
보고 있으면 답답하니 아예 보지않으려 구매를 하지 않는다
뒤 돌면 기억 나지 않는 열망템이 하나 둘이 아니다
집 안에 1인분의 침구류, 텅텅 빈 옷 장만 남는 걸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갈 때 즐거운 이유가 언제나 어디로 떠나도 될 정도로 가장 필요한 물건들만 컴팩트하게 챙긴 내가 어떠한 것에도 미련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 때문이라는 걸 읽고 깨달았기에
갖고 있는 물건을 사용하고, 더욱 들이지 않고, 감사히 처분하며 비워야겠다 생각했다
처음 이 집에 당첨 되어 봤을 때 그래도 괜찮게 살만한 크기라 생각 했다
지금처럼 좁다는 생각을 했어도 지금과 같은 의미의 좁음은 아니었다
지금은 비좁음이니까
이 집이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들여다 놓은 내 동거물건들이 많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보다 자주 더 많이 쓸고 닦고 비우고 들여다보며 가벼워져야겠다
정말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적당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해야겠다
책을 읽다 몇가지 적어 두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걸 또 토닥토닥 해 봐야겠다
•미니멀리즘의 한 가지 귀결은 ‘당신에게 부족한 물건이란 없다!’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을 줄여 청소가 편해지도록 하자
•방에 쌓여 있는 것은 먼지와 더러움이 아니다.
먼지나 더러움을 방치한 과거의 자신이 쌓여있는 것이다.
해야 할때 하지 않았던 자신이 퇴적되어 있다.
먼지나 더러움은 싫지만 무엇보다 싫은 것은 그 것을 방치한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싸다고 사지 말고 공짜라고 받지 마라*
네.. 알리 천원마트 끊겠습니다.. ㅠ